마음은 우주의 본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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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불교 철학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우주의 본체는 마음이다”라고 할 수 있다. 불가佛家의 모든 종교적 교훈은 이 한마디에서부터 나온다.
원래 부처님은 처음 《화엄경》을 설하셨으나, 사람들이 이를 알아듣지 못하자 결국 기초 과정이라고 할 《아함경》에서부터 시작해 올라갔던 것이다. 즉 불교 경전들을 현대 교육 과정에 비유하면 방등경부가 중학교, 반야경부가 고등학교, 법화경부가 대학교 과정에 속한다. 수학 공식을 초등학교에서부터 대학교까지 난이도를 높여 가며 이해시키듯이 불가의 진리도 정도를 달리해 강화講話하는 것뿐이다.
따라서 팔만대장경이라는 엄청난 불교 경전도 하나로 꿰뚫어 이해를 하고 나면 아주 간단명료한 것이 된다. 불교 교리가 어렵고 방대하다는 얘기는 중학교 과정이나 고등학교 과정 한 부분만을 보았을 때 하는 말이다.
불가에서는 우주의 생성을 업業의 인因으로부터 인과필정因果必定의 원리에 따른 계界가 생겨 윤회하는 것으로 본다. 범어의 ‘카르마karma’를 번역한 ‘업’이란 말은 ‘만든다’, ‘짓는다’, ‘한다’ 등의 활동을 의미한다.
결국 마음에 한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업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착한 생각도 하나의 업으로 보고 이를 선업善業이라고 한다.
업은 그 인에 대한 어떤 결과가 올 때까지 소멸하지 않는 업력불멸業力不滅의 원리를 갖는다. 그래서 불가에서는 10악업十惡業을 감減하고 10선업十善業을 행行하라고 한다. 10악업이란 살생․도둑질․사음邪淫․사기․아첨․이간질․욕설․탐욕․화냄․어리석음을 말하고, 이것의 반대가 10선업이다.
악업을 금하는 것은 소극적인 수행 방법이며, 10가지 선을 행하는 것은 적극적인 수행 방법이다. 10악을 줄인 5계(五戒; 불살생不殺生, 불투도不偸盜, 불사음不邪淫, 불망어不妄語, 불음주不飮酒)만 지키면 인도人道에 태어나고, 10선을 행하면 천계天界에 이른다는 말이 있다.
따라서 방생이나 보시, 범행梵行 등은 살생․도둑질․음행淫行을 금하는 데서 더 나아간 적극적인 선행이라 하겠다. 물론 이런 얘기들은 불교 교리로 보면 기초적인 수준이지만, 오늘의 ‘사회악’이란 것이 바로 불가에서 말하는 악업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되십(이부분수정)지 않을 수 없다.
모든 업은 마음이 미迷한 데서 비롯된다. 원래 사람의 마음이란 청정淸淨한 것이 본성이지만, 번뇌나 망상의 객진客塵이 들러붙어 업을 짓게 된다. 망상이 붙지 않은 마음의 본체를 진여眞如라고도 한다.
중생이 신구의身口意를 청정하게 가지려면 그것으로 인한 악한 행위(악업)가 어떤 것인가를 구체적으로 아는 것이 중요하다. 중생의 악업에는 신삼身三․구사口四․의삼意三이 있다. 먼저 몸으로 짓는 악업이 3가지, 입으로 짓는 악업이 4가지, 뜻으로 짓는 악업이 3가지로 이 모두를 합해 10악업十惡業이라고 한다.
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몸으로 짓는 업은 살생殺生․도행盜行․음행淫行이 있고, 입으로 짓는 악업은 기어綺語․망어妄語․양설兩舌․악어惡語가 있으며, 뜻으로 짓는 악업은 탐貪․진瞋․치痴가 있다.
이러한 10가지 악업은 각기 상품․중품․하품으로 다시 분류가 되는데, 상품 악업을 지은 사람은 아귀가 되고, 하품 악업을 지은 사람은 축생畜生이 된다. 다만 이러한 것은 실제 그렇게 된다는 게 아니라 근기에 따른 방편일 뿐이다.
사람들은 악업을 행하지 않으면 선업이 되는 게 아니냐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반드시 적극적으로 선을 행해야 한다. 그렇다면 10악을 어떻게 10선으로 전환하느냐가 중요하다. 그것은 살생을 안 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죽어 가는 목숨을 살려야 한다[放生].
그런데 불자들은 방생의 의미를 모른 채 미꾸라지를 사다가 물에 놓아 주는 것을 방생으로 잘못 알고 있다. 큰 생명을 살리는 것이 진정한 방생이다.
부처님은 “어떤 중생이든지 죽어 가는 목숨을 보거든 제 목숨을 팔아서라도 반드시 살려주라”고 하셨다. 고기가 죽어 갈 때 비구승이 그냥 지나가면 원망을 한다. 또 도둑질을 안 하는 것이 선이 아니라 보시布施하는 것이 선이다. 이를테면 자기가 가진 것을 가난한 이웃을 위해서 아낌없이 주어야 선이다.
사람들 중에는 이렇게 반문하는 사람들이 있다. “남의 것을 훔치지 않으면 괜찮지 않나요?”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말이다. 남을 것을 훔치지 않는 행위에 머물거나 자족하지 말고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자기 것을 남들과 기꺼이 나눌 줄 알아야 한다. 음행淫行의 경우에도 억제하는 것은 물론이요, 나아가 범행梵行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입으로 짓는 악업을 어떻게 하면 선업으로 전환할 수 있을까? 이는 기어를 정직어로, 망어를 진실어로, 양설 대신 화합어로, 악어를 유연어로 바꿀 때 가능하다.
마지막으로 의로 짓는 악업인 탐심貪心․진심瞋心․치심痴心에 대해서 부처님은 이렇게 말했다.
다탐중생多貪衆生은 부정관不淨觀하고,
다진중생多嗔衆生은 자비관慈悲觀하고,
다치중생多癡衆生은 인연관因緣觀하라.
‘탐심이 생기게 되면 부정관을 하라.’ 이 말의 핵심에는 애욕에 대한 경책이 있다.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이나 한 꺼풀 벗기고 나면 그 속에는 오물로 가득 차 있다. 그래서 눈앞에 천하의 양귀비가 있다 해도 그녀의 뱃속에 들어 있는 오물을 상상해 보면 마음이 홀리지 않을 수 있다.
이것을 ‘백골관白骨觀’이라고도 하는데, 사람의 해골은 하나같이 보기에 흉측하다. 아무리 천하의 절세미인이라도 그 사람의 겉만 보지 말고 백골을 상상하면 탐심이 동하지 않게 된다.
그리고 진심, 즉 화내는 마음은 자비의 마음으로 고쳐먹어야 한다. 자慈는 중생에게 즐거움을 준다는 뜻이고 비悲는 자기를 희생해서 중생을 돕는다는 뜻인데, 화를 안 내는 데서 그치지 않고 자비로운 마음을 갖는 적극적 행위를 강조한 것이다.
치심癡心, 즉 어리석은 마음은 인연관因緣觀을 하라고 하였다. 원래 ‘치’는 ‘탐’과 ‘진’에 따라다니는 것으로, 어리석으니 탐심이 생기고 성을 내게 되는 이치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이 어리석은 집착을 끊을 수 있느냐가 관건인데 그것은 인연의 이치를 터득해야 한다.
인因은 씨앗이고 연緣은 조건으로 인과 연이 닿아야 만나게 되고 매사가 성립된다. 어리석은 중생들이 이것을 모르고 자꾸 집착하여 만萬 가지 고통이 생기는 것이다. 만상이 인연이 닿으면 생하고, 인연이 다하면 없어진다. 그런데 좋은 것을 억지로 잡아 두려고 할 짓 못할 짓 가리지 않고 범하는가 하면, 사랑하는 사람이 평생 자기 곁에 있을 줄 알았다가 떠나면 통곡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인간이 연기緣起된 존재인지 모르고 사는 자가 바로 중생이다.
10악을 10선으로 바꾸는 것을 ‘인천교人天敎’라고 한다. 하지만 이것은 팔만대장경의 입문에도 끼지 못하는 단계다. 부처님의 교리가 이렇게 길고 길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모든 중생이 각자 제가 갖고 있는 보물을 모르고 허덕이는 모습을 깨우쳐 주려고 온 것이다.
결국 신심의身心意, 즉 몸과 마음과 뜻이 청정하면 부처님과 함께 있는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부처님 당시라도 같이 있지 못한 것이다.
부처님은 이 한마디를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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